순교자 주기철목사님 1편

    운영자 2022-01-13 22:40 조회수 아이콘 143

    

       한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 주기철 목사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시절에 일본군의 신사참배와 맞서 싸우시다가

       순교를 당하신 분이세요.

       목사님의 일생을 통해 어떠한 일들이 있었고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믿음을 가지셨는지

       우리 함꼐 알아보도록 해요.



    1. 일본에 빼앗긴 우리나라와 어린시절

    주기철 목사님은 1897년 경남 창원군 웅천면에서 3남 3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이 청일전쟁(지금의 중국인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과 러일전쟁(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계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때였고 결국 우리나라도 1910년에 일본의 강압적인 침략에 못 이겨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답니다. 또한 당시에는 서양문물과 함께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가 전파되던 시절이었어요. 1880년에는 우리나라 말로 신약성경이 출판되었고 1885년에 세워진 배재학당과 한국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 연희전문학교는 모두 선교사들이 지은 곳이었지요.

    어린 주기철은 기독교를 믿고 교회를 세운 큰형을 따라 열심히 주일학교에 다녔고 17살이 되어서는 기독교학교인 멀리 평양의 오산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곳은 위대한 독립운동가(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신 남강 이승훈 선생님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인재를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며 전 재산을 털어서 세우신 기독교학교였어요. 주기철은 오산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라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다졌고, 교회에서 세례도 받았으며 교장 선생님이었던 고당 조만식 선생님과 함께 틈틈히 전도여행을 다녔어요.


    어느덧 학교를 졸업해 20살이 되었고 공부를 더하기 위해 연희전문학교(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우신 지금의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그만 눈병이 심해져 공부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고향에서는 교회의 집사로 활동하며 사람들에게 한글과 민족정신을 가르치며 바쁘게 지내던 중 1919년에는 3.1운동 앞장서서 주도한 청년대표로 체포되어 1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의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때는 1920년 당시 부흥사로 유명하셨던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회에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성령님을 만나게 되었고 눈물로 회개하며 거듭나게 되는데요, 이 사건이후로 목사가 되기로 다짐하고 당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평양의 평양신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 그림 : 박수예(사이트 운영자)


    참고서적

    주기철 / 오병학 지음 / 규장 신앙위인 북스 개정판2007

    만화로 보는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 / 장하림, 주광조 원작 / 대성닷컴2007

    네이버 캐스트/ 신사참배 거부 항쟁에 목숨을 바치다 / 글 김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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